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Moving)’은 한국형 히어로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가족과 초능력이라는 이질적 요소를 탁월하게 결합시킨 작품입니다. 초능력을 지닌 채 살아온 세대와, 그 자녀 세대가 현대 사회 속에서 겪는 고뇌와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 드라마는 단순한 액션이나 SF 요소를 넘어, 인간관계와 감정,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아냅니다. 화려한 영상미와 더불어 촘촘하게 설계된 스토리는 기존 히어로물과 차별화되며,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초능력, 그것은 선물인가, 저주인가
‘무빙’은 단순한 초능력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초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오히려 그 능력을 숨기며 살아가는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주인공 김봉석은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사실 그는 중력을 무시하고 공중에 뜰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어머니 이미현 역시 엄청난 민첩성과 감각을 지닌 과거 정부 요원이었다. 그리고 이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한 전학생이 전학 오면서부터 서서히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다. 드라마는 능력을 자랑하거나 전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감추고, 숨기며 살아가는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초능력이라는 설정은 인간의 불안과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 주목받게 되고, 위험에 노출되며, 정체성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 이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다름'을 가진 존재들이 느끼는 현실적 공포와도 맞닿아 있다. 더불어 ‘무빙’은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다. 초능력을 지닌 부모들이 자녀를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조명한다. 이미현은 아들이 자신처럼 위험한 삶을 살게 될까 두려워하며, 김봉석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점점 깨달아가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이처럼 이 드라마는 슈퍼히어로물에서 보기 드문 '가족의 서사'를 중심에 배치함으로써, 보다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서사 구조를 완성시킨다. 2023년 디즈니+에서 공개되었지만, 그 진가는 2025년에 들어서며 더욱 인정받고 있다.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물었던 장르적 도전, 그리고 그 안에서 풀어낸 인간적 서사. 이 모든 것이 '무빙'을 단순한 오락물이 아닌, 감동적이고 철학적인 드라마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숨겨진 능력, 드러나는 진실
‘무빙’의 가장 강력한 장점은 인물 간 관계에 대한 세밀한 묘사이다. 김봉석 외에도 여러 초능력 보유자가 등장하며, 그들은 과거에 정부 비밀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이들은 국가를 위해 일했지만, 이용당하고 버려진 경험으로 인해 현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은둔하거나 사라진 채 살아간다. 그들의 공통점은 능력을 더 이상 쓰지 않으며, 자녀에게도 이를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어떤 계기로 인해, 이들 세대의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특히 이들을 제거하려는 조직의 등장은 드라마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플래시백 구성은 서사의 밀도를 높여준다. 과거 정부는 초능력 보유자를 전략적으로 활용했으며, 이는 윤리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국가를 위한 희생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초능력은 공공재인가, 개인의 자산인가? 액션 연출 또한 이 드라마의 백미다. 캐릭터마다 능력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전투 장면마다 전혀 다른 감각을 선보인다. 빠른 속도, 강한 체력, 감각 회피 등 다양한 능력들이 충돌하며 시각적으로도 긴장감 넘치는 구도를 연출한다. 하지만 이 모든 액션은 이야기의 본질을 흐리지 않는다. 액션은 수단일 뿐, 진짜 드라마는 인물들의 감정 안에서 벌어진다. 자녀 세대와 부모 세대 간의 갈등과 이해, 능력을 둘러싼 정체성 혼란, 그리고 타인을 지키기 위한 희생은, ‘무빙’을 전형적인 히어로물에서 벗어나게 만든다. 특히 김봉석과 장희수의 관계는 성장 드라마의 정수를 보여주며, 또 다른 감정선으로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결국 ‘무빙’은 숨겨진 능력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성, 그리고 사회의 이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히어로물로서도 훌륭하지만, 한국 사회 속 개인의 역할, 국가와 시민의 관계, 가족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사회극이기도 하다.
히어로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선택
‘무빙’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슈퍼히어로’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망토도, 스포트라이트도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고립되고, 두려워하며, 살아남기 위해 은둔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그들이 결국 가족과 사회를 지키기 위해 다시 능력을 꺼내드는 과정은, 단순히 초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윤리적 선택에 대한 이야기로 읽힌다. 드라마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책임’이다. 능력을 갖는다는 것은 곧 책임을 지는 일이다. 자녀를 보호해야 하는 부모의 책임, 자신을 지켜야 하는 개인의 책임, 사회에 대한 책임. ‘무빙’의 인물들은 이러한 책임 사이에서 갈등하며, 끝내 자기 방식대로 정의를 실현해 나간다. 또한 세대 간의 이해와 화합 역시 중요한 주제다. 초능력을 둘러싼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시각 차이는, 단순한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온 배경과 철학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될수록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새로운 미래를 위한 연대를 이뤄낸다. 이는 2020년대 중반의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 갈등과도 맞물리며, 시의성을 더한다. ‘무빙’은 액션과 감동, 그리고 메시지를 모두 갖춘 드라마다. 특히 히어로물에 식상함을 느낀 시청자에게는 전혀 다른 결의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체성, 소속감, 사랑, 상처, 희생. 이 모든 인간적인 감정이 초능력이라는 비현실적 틀 안에서 더욱 진하게 드러나는 역설적인 드라마다. 결론적으로 ‘무빙’은 ‘능력’이 아니라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가진 힘이 무엇이든, 그것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우리의 존재는 달라진다. ‘무빙’은 그 선택의 무게를 진지하게 묻는 드라마이며, 보는 이로 하여금 다시금 자기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